베란다 화분이 거실로 이사왔어요

절친 한 분이 카톡으로 단톡방에 글을 올렸네요
“오늘이 주일인데 안식일(주일)에 관한 
의미를 각자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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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안식일은 율법의 일부로 출31.35장에 나와있네요.
먼저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출애굽 백성에게 하나님을 
설명하고 알려주기 위해 율법을 주셨는데 출24장에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과 계약을 한 것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너희가 내 백성이 되고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셨네요(출애굽기24장)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자신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런 것은 내가 싫어하고, 이런 것은 내가 좋아한다.

하나님이 좋아하신 것을 우리가 지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고, 싫어하는 것을 행하면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모르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
냉엄해 보이지만 이방인이 지키는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레위 와의 계약을 지키면 그의 백성이 되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율법을 지키게 했던 것은 이방인과 다르게
그들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함이었습니다...(말2장) 

안식일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인생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계획의 0.01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이루셨는데 
그 일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일인지, 예를 들면 
우리 몸속의 세포 한 개만  들여다 보아도 
그 작고 정교하고 놀라운 신비한 생명의 메커니즘을
감히 누가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창조를 마치고 7일에 기뻐하며 쉬셨습니다.
그날을 안식일이라 정하시고 그 즐거움의 안식에  
자기 형상으로 창조한 아담과 함께 즐거워하시고 
아담에게 자랑했겠지요?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창조한 이 만물을 보라 ...”나의 이 기쁨의 날에 
너도 참여하여라, 왜냐하면 땅 위의 모든 창조물을 
네게 주어 다스릴 권한을 내가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안식일의 기본 뜻이 아닐까요?

그런데 너는 안식일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주일은 더 바쁩니다, 친구 만나고, 아이들과 함께하고
돈 벌어야 하고…. 비즈니스 해야 한다니까요~

“아들아, 네가 나와 계약한 내 백성 내 자녀가 맞나?
내 자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왜냐하면
네가 염려하는 것 다 내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네가 믿지 못한다면 계약은 깨진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히11:6)
 ……………………………
2020. 12. 4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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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원의 문화이야기]를 읽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론을 얻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던 교회 회복의 방향에 더욱
확신을 주는 결론이었기에 그렇다.
제목을 보고 [세상과 기독교 문화]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짐작했으나, “문화는 무엇인가?” 로 시작하여 
전문적인 내용이라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문화는 무엇이고, 문화와 기독교의 관계는 무엇인지, 
특히 개혁주의 “[문화 소명]의 완성이” 이 무엇인지
좀더 폭넓게 알게 되었다.

작금 교회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할 때 
나는 많은 생각에 빠지곤 하였는데, 교인이 지탄을
받고 있다면 공동체의 누가 잘못된 것일까? 
정말 그렇게 심각하다면 고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미 굳어진 나무처럼 시기를 놓친 것일까? 
교회에서 매일 새벽 설교를 하고, 매 주일 설교로 
가르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그 설교는 
꽝인 것이다. 
공동체 모두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면……
그러나 나는 설교가 형편 없었다, 고 생각지 않는다.
그 공동체 속에 너무 많은 육의 사람들이 가득하여 
설교를 들어도 회중이 감동하지 못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어려운 상태 였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중요한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둘째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가르쳐야 한다, 
셋째는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요6:45) 
새 신자가 교회 출석하여 다른 사람처럼 매주일 헌금하고
설교를 들었다고 했을 때, 1년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일까? [아멘]의 믿음이 있으면 된다? 
그동안 많은 새 가족이 들어 왔으나 그리스도인으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교회는 영적 파워가 
떨어지고, 급기야 세상사람 보다도 못하다는 
지탄을 받게 된 것은 아닐까?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으니, 답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소그룹 성경공부가 답이다”라고 말하겠다.
중학교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바로는
교회 내에 [소그룹 성경공부]반이 활성화 되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를 가르쳐야 된다고 믿는다.
물론 리더는 영적인 뜨거운 열정을 갖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믿음의 사람, 즉 [행전10장]의
베드로와 고넬료의 성경 공부처럼, 얼굴을 맞대고 
마음으로 전달하는, 성경공부의 리더가 있어야 된다.
사도행전의 때처럼, 설교만 들으면 3천명이 회개하는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정 생각한 것일까? 
우리시대의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모두 내 교회는 괜찮은데 다른 교회가 문제라고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의 고백도 없이, 
영광된 주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
어린 아이에게 걸음마도 가르치지도 않고 세상에 
내보내는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 책에서 기독교 문화는 [거룩한 교회의 회복]
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 교회의 거룩한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교회의 개혁은 가죽을 찢어야 하는 그런 처절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설교가 만능 이라는 생각을 내려 놓고, 
모든 리더가 해산하는 부모 되어, 걸음마를
가르치고, 영적으로 지쳐있는 자에게 재충전하는 
공동체의 영적 나눔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그룹 공부는 작은 수 일지 모르지만
금방 누룩이 되어 교회가 뜨겁게 살아날 것이다.
교회의 한 사람만 가죽을 찢는 혁신이 이루어 지다면
아버지 학교의 ”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처럼
교회가 회복되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공동체의 아버지가 죽거나,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할 때 교회는 드디어 세상 속에 소금처럼 녹아지고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였습니까?  묻겠지요?
맞습니다, ..... 누구를 탓하랴 !!
    …………………
     2020.11.14  /  늘감사

기독교 문화의 회복
문화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신국원의 문화이야기]를 참고 해서 
“기독교 문화의 회복”에 대해서 말해 보겠어요.

문화를 크게 대별하면 신을 섬기는 종교적인 문화와,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을 앞세운 인본주의로 대별되며, 
17세기 휴머니즘, 즉 신본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이 
합리적, 과학주의와 연계되어 계몽주의로 발전했고,
이런 사조로 현대에 와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에 
기독교문화는 빛을 잃고,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는 우리가 사는 삶 전체가 곧 문화이고, 
그 사회의 경험의 축척과 전승이 문화라고 할 때,
기독교문화는 있지만, 세상의 문화와 다르지 않는 
오히려 지탄을 받고 외면 받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 말은 기독교의 독특한 문화가 없고, 사회와 같은
똑 같이 부패하고 냄새 나는 문화가 교회 안에도
넘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자(著者)는 명쾌한 대안을 제시 하였는데, 
그것은 기독교인의 “ 거룩한 삶의 회복” 입니다.
세상의 문화가 휘황찬란 해 보여도 그 뒤에는 부패와
여러 중독으로 인간의 영혼은 피폐하게 되고 결국
인간은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가게 할 것입니다.
이에 기독교는 본연의 사명을 스스로 일깨워서 
“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은 짝퉁일 뿐, 새로운 문화를 만들지 못해요, 
세상과 완전 구별되는 깨끗한 문화, 즉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자연과 조화롭게 됨으로, 세상에
평안을 주는, 독특하고 거룩한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기독교의 고급 문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 
각인이 거룩한 삶을 살아 내야 합니다.
 
“ 샬롬의 문화”- [거룩한 삶의 회복]을 통해 세상의
쾌락과, 온갖 술수와, 비열함과, 부정과, 더러움의 
문화에 지친 사람들이, 성결과 거룩함의 문화에서 
쉼을 얻고, 인생의 깊은 목적과,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고 관리할 때,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보고,
기독교를 흠모하고 그리스도께 이끌리어
이 평화의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고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살게 됨으로, 그가 샬롬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또 하나 새로운 빛과 소금으로
발현 될 것이고, 이것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세상을 압도하는 기독교의 문화가 될 것 입니다.  
 ………………….
2020, 11, 3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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