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원의 문화이야기]를 읽고,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론을 얻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던 교회 회복의 방향에 더욱
확신을 주는 결론이었기에 그렇다.
제목을 보고 [세상과 기독교 문화]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짐작했으나, “문화는 무엇인가?” 로 시작하여 
전문적인 내용이라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문화는 무엇이고, 문화와 기독교의 관계는 무엇인지, 
특히 개혁주의 “[문화 소명]의 완성이” 이 무엇인지
좀더 폭넓게 알게 되었다.

작금 교회의 정체성이 혼란스럽다고 할 때 
나는 많은 생각에 빠지곤 하였는데, 교인이 지탄을
받고 있다면 공동체의 누가 잘못된 것일까? 
정말 그렇게 심각하다면 고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미 굳어진 나무처럼 시기를 놓친 것일까? 
교회에서 매일 새벽 설교를 하고, 매 주일 설교로 
가르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그 설교는 
꽝인 것이다. 
공동체 모두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면……
그러나 나는 설교가 형편 없었다, 고 생각지 않는다.
그 공동체 속에 너무 많은 육의 사람들이 가득하여 
설교를 들어도 회중이 감동하지 못하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어려운 상태 였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는 중요한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둘째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가르쳐야 한다, 
셋째는 성령님의  가르치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요6:45) 
새 신자가 교회 출석하여 다른 사람처럼 매주일 헌금하고
설교를 들었다고 했을 때, 1년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일까? [아멘]의 믿음이 있으면 된다? 
그동안 많은 새 가족이 들어 왔으나 그리스도인으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교회는 영적 파워가 
떨어지고, 급기야 세상사람 보다도 못하다는 
지탄을 받게 된 것은 아닐까?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으니, 답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소그룹 성경공부가 답이다”라고 말하겠다.
중학교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바로는
교회 내에 [소그룹 성경공부]반이 활성화 되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를 가르쳐야 된다고 믿는다.
물론 리더는 영적인 뜨거운 열정을 갖고,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믿음의 사람, 즉 [행전10장]의
베드로와 고넬료의 성경 공부처럼, 얼굴을 맞대고 
마음으로 전달하는, 성경공부의 리더가 있어야 된다.
사도행전의 때처럼, 설교만 들으면 3천명이 회개하는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진정 생각한 것일까? 
우리시대의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모두 내 교회는 괜찮은데 다른 교회가 문제라고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의 고백도 없이, 
영광된 주의 자녀가 될 수 있을까?
어린 아이에게 걸음마도 가르치지도 않고 세상에 
내보내는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결국, 이 책에서 기독교 문화는 [거룩한 교회의 회복]
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 책에서 교회의 거룩한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교회의 개혁은 가죽을 찢어야 하는 그런 처절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설교가 만능 이라는 생각을 내려 놓고, 
모든 리더가 해산하는 부모 되어, 걸음마를
가르치고, 영적으로 지쳐있는 자에게 재충전하는 
공동체의 영적 나눔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그룹 공부는 작은 수 일지 모르지만
금방 누룩이 되어 교회가 뜨겁게 살아날 것이다.
교회의 한 사람만 가죽을 찢는 혁신이 이루어 지다면
아버지 학교의 ”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처럼
교회가 회복되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나는 공동체의 아버지가 죽거나,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할 때 교회는 드디어 세상 속에 소금처럼 녹아지고
세상에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였습니까?  묻겠지요?
맞습니다, ..... 누구를 탓하랴 !!
    …………………
     2020.11.14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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