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진주 찾아 사마리아 우물가에 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하나님의 나라인 
[보화]가 묻힌 밭을 샀다는 내용입니다.
즉, 천국(하나님)= 밭에 감추인 보화
사람이 => (모든 소유를 팔아) 보화를 샀음.

그런데 45절에는 비슷한 이야기 같긴 한데….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으니,,,
상인이 좋은 [진주]를 발견하여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진주를 샀는데 그 상인이 천국 즉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천국(하나님) = 좋은 진주 구하는 상인 
하나님/상인 =>(모든 소유로..) 값진 진주를 샀음.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는 정반대 개념이네요
하나님께서 좋은 진주를 발견하여 샀다면 
그 진주는 무엇일까, 누구일까? 
세상에,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셔서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 나를 사셨다는 뜻이 아닐까요?
이것이 천국의 비유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보화 중에서 콕 찝어서 [진주]라고
하셨을까요?
금, 은, 청보석, 남보석, 많지만 진주는 다릅니다.
고통 속에서 연단되어 만들어진 결정체이니까요.
사람은 화려한 보화를 좋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인내로 연단된 진주를 좋아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이야기가 연결되어 생각 납니다.
예수께서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여섯 시쯤, 물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 먼저 말을 거셨어요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청하세요?
그런데 대답이 이상합니다.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예수께서 선물을 주고 싶다는 표현이 숨어있고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고 싶은 표현이 숨어 있고
생수를 주고 싶다는 표현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은 사마리아
사람 중에 이 여자를 일부러 찾아 오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 여인은 자기가 남편 여섯을 둔 사실이 
드러났으나 “고개 숙여 부끄러워 하더라” 그런
기록은 없고, 개의치 않고, 엉뚱한 질문합니다.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아마도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그것이 
그 인생 최고의 숙제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주 중요한 예배에 대한 말씀을 
그 천한 여자에게 영과 진리에 대해 말합니다.

 

많은 설교를 들어보면 ,,, 그는 스스로 부끄러워  
사람이 없는 시간에 물 기르려 왔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고, 또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왜 이 여자를 찾으신 것일까요?
이 여자는, 그리스도가 오실 줄을 알고 있었고 
그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진주를 만나기 위해서 여기 
이 사마리아 여자를 찾은 것이 아닐까요? 
그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가서, 그리스도를
보았다 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께로 왔습니다.
여자를 믿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여자가 부정한 여인이고 여섯 사람과 간음한 
여인이라면, 누가 그 엉뚱한 말에 관심 갖겠어요?
간음하여 얻은 남편이라면, 네게 남편 다섯이 있고
..에서 [남편]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것입니다.
그들은 남편은 아니면서도 남편처럼 살았다는 
말이어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기구한 운명이네요.
지금까지 살고 있는 그 기구한  삶을 상상해 보세요

이 여인의 대화를 살펴보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즉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을 구하는 나그네에서, 하나님의 
선물과, 야곱보다 크신 이,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 
선지자, 예배 할 곳, 참된 예배, 그리스도, 그리고
“내가 그라” 이 말씀을 짧은 시간에 단계 단계 
깨달아 가는 명철한 여인이 틀림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니고데모가 
질문하였지만, 주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나중에는 주께서 혼자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찾아온 것이 고마워 끝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와 분위기가 영 다릅니다….

나는 성경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한 것보다 
더 오랫동안 단둘이 대화한 곳이 생각나지 않네요.

그 여자가 귀한 진주여서, 예수께서 친히 찾으신 
것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고자 했기 때문일까?
그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까?

하나님은 마치 좋은 진주 구하는 상인과 같으니,
그곳이 사마리아라 해도, 남편이 다섯이라 해도,,,
상인은 자기 모든 것을 팔아서 그 진주를 사기
위해서 그곳에 온 것이 아닐까요?

그 연인은 궁금한 것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요4:25) 이 대답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에 있는, 베드로의 고백에서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21:17)
시몬의 고백과, 이 여자의 고백을 비교해 보세요

그런데 마태복음 22:25 의 말씀에 놀랐습니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음으로 그 아내를 둘째에게 물려주고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 예수님을
시험 하고자 만들어 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혹시 이 여자가 사마리아의 그 여자가 아닐까?
사실이라면 예수께서 “네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 말씀이 넘 쉽게 설명되고…

사마리아 여자가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그녀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을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듣고 예수께로 온 것이 설명됩니다.
그 여자 말을 신뢰 한 것은 그가 수치스럽고 
부정한 여자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진주를 구하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팔아서 진주를 샀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영과 진리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  

그런데 그 뒤에 묵상하면서 생각해 보니 
마22장에 나오는 여자는 남편을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했으니
남편 여섯이 모두 자기 남편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러나 맨처음 죽은 남편은 정식 남편이니까
모두 합하면 남편 일곱을 둔 여인이었겠네요
그러면 칠형제의 이야기와 일치하네요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할 때 
어떻게 그 형제들은 젊어서 죽게 되는 것일까?
유전적으로 치명적인 질병이 있었는지도
세사람 까지는 몰라도, 계속 죽음을 보면서도
어떻게 남편으로 맞이 할 수 있었을까?
율법을 그렇게 까지 지켜야 했을까?
그 여자는 즐거이 남편 여섯을 맞이 했겠어요?
그 여자의 마음 속에는 어떤 한이 있었을까?

그런데 마태복음 22장의 여인은 이미 죽었다고 
했으니,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자는 시간
상으로 훨씬 일찌기 일어난 일이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은 공생애 시작 후 첫번 째 
유월절이 막 지나간 때이고, 마태 복음 22장은 
세번째 유월절을 맞기 전이었으니까
얼추 시간상으로도 가능한 일이라고 추측되네요.

나는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을 40대 쯤의 
여인으로 상상하였습니다. 아마도 삽화 때문에
그러나 사실은 70대의 할머니 일 수도 있고
“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라고 말한 뜻이 이해 됩니다. 
늙어 힘드는데 물동이 까지 날라야하니,,,,

영광과 존귀와 거룩하신 주님은 이런 분이셨군요.
아마도 곧 죽음을 남겨둔 이 할머니를 찾아와서
꼭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7남편을 둔 여인 
나는 네게 하나님의 선물을 주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를 네게 주고
네가 나를 찾았느냐?
나도 , 나의 모든 것을 팔아서 너를 살 것이다
그래,............... “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2023. 4. 7   / 늘감사

오래전에 촬영한 순천만 와온의 일몰풍경 입니다.

쉽게 예수 믿어지나?

 

어떤 사람은 그럽디다...

세상에서 잼있게 살다가 한편의 강도처럼 죽음을

앞둔 그 때 믿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 말의, 옳고 그릇 됨을 따지기 전에, 과연 그

강도는 아무것도 모른 무 상태에서 어쩌다 예수를

만나서 " 당신의 나라에 임 할 때에 나를

기억 하소서" 라는 믿음의 말을 한 것일 까요?

 

사람은 누구나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십자가에

달리는 고통의 극한 상태가 되면 침착 할 수 없고,

악에 복 바쳐 울부짖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편의 강도처럼 예수를 비난하고

악에 찬 말을 하는 것은 차라리 당연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의 강도는 침착한 말로

예수님을 변호하고,.,"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라고 말합니다...

그때 유대인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의 나라"

에 대해 누가 알고 있었겠어요?

그 당시 12 제자라도 아마 잘 못랐을겁니다.

 

요18장 33절에 보면,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을 때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이 강도는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 할 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암튼 그 강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그분의 나라는 하늘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의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를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소리질러,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그 한편 강도의 "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기억 하소서" 라고 한 말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말씀 이고요,

잠깐 생각하여 쉬운 말로 예수께 고백한

그런 말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 6:3 )

…………………………………..

2022. 10. 21 / 느을감사

잠깐만, 교회 꼭 가야해?

길었던 코로나의 거리 두기와 격리 등으로 우리는
정상적인 예배 참석이 어려웠기 때문에 교회에
가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
교회 가지 않고도 신앙생활 하는데 문제 없으니,
꼭 교회 가지 않더라도 뭔 문제있나?
정말 그럴까?

구약성경에서 교회를 찾는다면 ...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였고, 그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였고, 언약의 땅 가나안에
[이스라엘 ] 백성을 들이시고, 그곳에서
선택된 백성이 성전을 중심으로 살게된다,

신약성경에서는, 교회를 엑클레시아[Ecclesia]의
어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택한 자들을 불러낸 모임]
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다면 
그 택함 받은 자가 함께 모임을 이루어 경배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택함을 받은 자가 모여있는 곳이 교회라면
왜 모여 있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첫째는 하나님과 성도와의 교통이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니 온 몸이 연합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으로 세운다(엡4:1-16)
두번째는 성도와 성도가 서로 사랑하기 위함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의 명령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암튼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택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백성이 되었다면

그 교회에 속해 있어야 성도로써 보전되지 않을까?


…………..   2022. 5. 17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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