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확실한 것은

 

"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마가복음 6:2 )

 

예수께서 안식일에 고향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는데

아마도 가버나움 회당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부정적인 마음으로 오히려

배척하였습니다.

 

우리도 가족과 친구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성장하였는데 갑자기

예수 믿고 뭔 일이야?

 

주님께서도 하시는 모든 일은 ..."내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14:10)"하십니다.

, 어느 순간부터, 주님 안에서 일하시는

주체가 바뀐 것임을 그들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과 같은 그런 지혜와 권능을

행할 수 없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 중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안에서 일하시는 주체가

주님이 아니고 []입니다.

 

주님 내 안에서 나를 운전해 주시고

나를 이끌어 주소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기도합니다.

…………………

24. 2. 23.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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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아 달리다굼 !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마가복음 5:41 )

                                             

예수께서 말씀하신 "달리다굼" 은 아람어로

" 소녀야 일어나라" 의 뜻이라고 합니다.

왜 예수께서 평상적인 헬라어로 말하지 않고

"달리다굼(탈리다 쿰)"하셨을까?

 

여기서도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권위/권세에

대해서 더 묵상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 중에 즉시 실행되어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경우는, 그 명령[Order]이 명확하여야 했기 때문에

아람어를 쓰지 않았을까?

 

나사로가 무덤에 있을 때 "나사로야...하지 않고...

"친구여 나오너라!" 하였다면 수많은 시체가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창조하신 그 분이

자연법칙 중에, 한정하여 어떤 부분을 정지시키고

바꾸어야 한다면, 전체 프로그램에 혼선을 주지

않고 이루어져야 함으로 아주 정확하고, 명확한

명령(Order)이 필요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

아람어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소녀야 일어나라하면 그곳에 또 다른 소녀도

있을 수 있음으로, 정확한 대상을, 한정하기 위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할 때는 대상이 명시

되었음으로 그를 만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처럼 권세있는 말씀 이라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런 말씀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 이후로는

룰과 법칙이 만들어 져서 반드시 실행될

것임으로 이 말씀을 내 삶에 적용시켜 낸다면

틀림없이 확실하고 변할 수 없는

법칙의 성공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함이 나의 무지입니다.

………………….

     24. 2. 22.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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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콘텍( Contact )?

"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마가복음 5:31 )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수많은 군중이 에워싸
미는 중에, 12년 동안 혈루병 앓던 여인이 
병고침을 받았는데 그는 생각하기를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한 것처럼 
그 여인의 바라는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에워싸 밀고 
있었는데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 여인 
뿐이었습니다...그들은 예수 앞에 나와서 1:1의
만남과, 안수와 말씀으로, 콘텍(contact)되어야 
병 고침이 이루어 질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에워싸 밀고 당기고 할 때 접촉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주님 오늘을 살 때에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나의 지적 능력이 부족하여, 광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합니다..내게 이해의 폭을 높여 
주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기도합니다.
………………
   24. 2. 21. 수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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