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당신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는 오늘 2019번째 성탄절에 즈음하여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제 좀더 솔직히 자신을 돌아 보리라

그동안 젊음을 핑계로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동안 가족을 핑계로 뒤로 내빼고,

회사에, 취미생활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주님, 아직은 아닙니다….

그러는 나를, 주님은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제는 퇴직을 하고, 자녀를 결혼 시켰습니다.

아직 남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나?

지금 진정,

내가 가지고 가야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의 건강을 위한 일 ?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일?

텃밭을 가꾸는 일?

 

동안 내 방식대로 살면서 자녀와 많이 다투었습니다.

그래요, 후회가 없도록 아이와 더 좋은 관계를 만들겠어요

이제는 내가 먼 길 떠날 수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이제는 하늘을 보면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겠습니다.

이제는 거품으로 쌓인 것들을 하나씩 버리겠습니다.

주님, 먹고 살기 위해 노년의 삶을 낭비하지 않게 해 주세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시들지 않게 붙들어 주세요

 

직도 여리고 어린 자녀를 위해 기도 해야겠습니다.

조카와, 그들의 자녀를 위해서도 기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편안하고 감사가 넘치는 죽음이 되도록...

죽음 앞에서 혹이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수십년을 신앙생활 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목표가 바로 앞인데

소망했던 문이 곧 열릴 터 인데

나의 건강 생활과, 친구 모임에, 취미생활에,

텃밭 가꾸는 일에, 정신을 팔고 있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제는,

틈만 나면 기도하고

틈만 나면 성경을 쓰고

틈만 나면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겠어요.

왜냐하면 이제 곧 그 문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본 조카와 손주는 그들의 부모보다

오히려 나를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나를 보고

하나님 경외하는 모습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들어 잔소리만 한다고, 없 수이 여기던 그들이

내 앞에 무릎 꿇고 공경할 것입니다.

피곤하다고 누워 잠만 자서는 안되겠지요?

앉아서 날마다 TV만 보아서는 안되겠지요?

이제 그 시간에 성경을 쓰고, 또 기도 하겠습니다.

자녀의 이름을 쓰겠어요

조카들의 이름을 쓰겠습니다

손주들의 이름을 다 쓰겠어요

그리고 날마다 그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내게 주시면 그 뜻 따르겠어요

 

전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는 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2019. 12. 25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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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한부 인생이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인가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마지막 삶을 준비해야 하는 그런 안타까움을 연상하게 됩니다.

 

맞는 말이지만

어느 누구도 시한부 인생이 아닌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그 시한부가 얼마나 짧은 것인지 차이는 있겠지만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건강한 당신이라고 100세 까지 산다는 보장이 있나요?

물론 120세 까지도 가능이야 하겠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이 험한 세상에서 알 수 없습니다.

어제는 멀쩡했던 처 오빠께서 고혈압으로 하직하셨습니다.

뉴스에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교통 사고로 도로에서 생을 하직하고

누구는 돈 때문에 칼에 찔려 하직하고

누구는 스스로 한강다리에 올라가서 하직하기도 합니다.

나는 오늘 괜찮다 할지 모르지만,

내일 어떤 일을 당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시한부가 꼭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누워있는 시한부는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한부 인지도 모르고 출근했다가

오후에 가족도 모르게 하직하는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단 사흘 이라도 시한부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이라도 했겠지요….

 

시한부를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자유로워 집니다.

누가 그분께

이 일을 해라, 저 일을 해라 간섭하겠어요?

다만, 남아있는 날들을 어떻게 쓸지가 문제일겁니다.

세상의 시계로는 길고 짧음이 있겠지만….

3년도 짧을 수 있고

3일도 충분히 길 수 있습니다…..

고민해야 할 첫째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닙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얼른 생각해 보면

왜 하필 내가 시한부냐고 항의 하겠지요?

초등 생 같은 질문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다.?

3일의 시한부도 받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3시간 뒤에 생을 하직하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저의 처 오빠 고인께서는 저녁을 잘 드시고 주무셨는데

아침에 식사하라고 문을 열고서야 아셨다니까요

바로 어제 아침의 이야기 입니다.

삼가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지만

오히려 따끈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사연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한부를 갖고 있는 당신은

사실은 대박의 축복입니다.

이 놀라운 기회를 당신은 얻으셨습니다.

세상 사람의 대부분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80평생을 살아도,

바쁜 인생의 삶을 위하여 달려가다 보면

멈출 수 없습니다.

관성의 법칙 있잖아요

우리가 철 들면서 시작한 삶의 법칙과

내가 소중히 여겼던 삶의 방법을 잠시 중단하고

맞게 살아 왔는지, 확인 할 수 있는 타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50대의 삶을 살았다면,

60대에도 그는 비슷한 삶을 살 거고

70대에도 비슷할 거란 말입니다..

그러다 시한부의 기회도 없이….

어느 날, 그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니까

시한부를 얻었다면 슬퍼할 것이 아니고

그 기회를 대박의 찬스로 만드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는

어떻게 대박의 기회로 만들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 2016. 9.24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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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마의 도시 / 순천

 

 

 

 

 

 

구도심을 세로 지르는 옥류 동천에는 끝없는 벚꽃길이 ...........

 

 

 

 

 

 

 

 

생명과 부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유충에서 나비로 변화되는 변태나,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부화를 통하여

부활을 이해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비 유충의 변태나, 병아리의 부화는

형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지만

생명체 활동이 정지되었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 자연적이고, 신의 영역에서 이루어 지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상식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과학을 맹신 하는 사람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미신으로 치부하고

믿지 않으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우리 정신을 과학으로 규명할 수 있을까요?

생명을 무엇이라고 규명할 수 있을까요?

살아있는 병아리와, 죽어있는 병아리가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없어졌는지,

그 생명이, 물질인지, 에너지인지, 파동인지----?

 

며칠 전에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인척(姻戚)중에 한 분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세상에, 오죽 이 세상이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유족의 오열에도 그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너무나 냉정하고, 단호한 것입니다.

세상의 누구라도 그 일을 다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나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 일에 대해서는 담담한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움은 있지만,

슬픔으로 눈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혹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연이 남아 있었나?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목이 메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사 가는 사람을 보면서, 다시는 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는 내가, 유독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담담하니

의외로 나는 참 냉정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흘렀습니다.

이처럼 생명이 끊어 진다는 뜻은 무엇일까?

생명이 무엇인지 명쾌한 답은 없지만

생명체에 대한 연구는 많은 것 같습니다.

생명체는 단백질로 구성되고,

스스로 자라나고, 호흡을 하고, 충격에 반응을 하고, 번식을 하는 등,

생명체를 규정하는 많은 이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물과, 무생물에 대한 차이점을

규명하는 수준이지, 생명 그 자체는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의 임무가 있다고 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가 열려야 하고,

돼지는 새끼 돼지를 생산해 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생명체가 본연의 임무를 중단한다면

그 생명체는 죽게 되고,

가령 당장 죽지 않더라도, 후손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전달이 끊어지게 됨으로 결국 죽게 됩니다.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소화합물의 물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생명체는 다음 세대를 위해 정확한 설계도면과

임무를 실행할 명령 (생명)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DNA 정보를 RNA를 통해 단백질 합성을 돕고 유전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 공장에 철판과 갖가지 부품이 쌓여있고

설계도면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자동차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 명령권자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목적과 필요에 의해 책임을 갖고

파워를 “ on” 한 상태에서

명령을 내려야 생산라인이 움직이면서

자동차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1:2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 6:35)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3:4)

 

즉 생명은 예수그리스도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생명의 본체는 창조주 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동차 공장의 사장은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생산라인 가동을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신은 왜 생명체를 만들고

너희는 번성하고, 이 땅에 충만하라 명령하였을까?

 

말라기서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라기 2 : 4~5)

 

물론, 여기 이야기의 배경은 하나님이 출애굽한 백성과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말한것이지만,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 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체를 만든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글이 다소 비약된 논리요

성경 말씀을 억지로 꿰어 마추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 부활의 아침에 --   2015. 4. 5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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