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마의 도시 / 순천
구도심을 세로 지르는 옥류 동천에는 끝없는 벚꽃길이 ...........
생명과 부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유충에서 나비로 변화되는 변태나,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부화를 통하여
부활을 이해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비 유충의 변태나, 병아리의 부화는
형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지만
생명체 활동이 정지되었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 자연적이고, 신의 영역에서 이루어 지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상식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과학을 맹신 하는 사람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미신으로 치부하고
믿지 않으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우리 정신을 과학으로 규명할 수 있을까요?
생명을 무엇이라고 규명할 수 있을까요?
살아있는 병아리와, 죽어있는 병아리가 어떻게 다른지
무엇이 없어졌는지,
그 생명이, 물질인지, 에너지인지, 파동인지----?
며칠 전에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인척(姻戚)중에 한 분이
스스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세상에, 오죽 이 세상이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유족의 오열에도 그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너무나 냉정하고, 단호한 것입니다.
세상의 누구라도 그 일을 다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나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 일에 대해서는 담담한지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움은 있지만,
슬픔으로 눈물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혹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연이 남아 있었나?
그런 일이 없었는데도, 목이 메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이사 가는 사람을 보면서, 다시는 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는 내가, 유독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담담하니
의외로 나는 참 냉정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흘렀습니다.
이처럼 생명이 끊어 진다는 뜻은 무엇일까?
생명이 무엇인지 명쾌한 답은 없지만
생명체에 대한 연구는 많은 것 같습니다.
생명체는 단백질로 구성되고,
스스로 자라나고, 호흡을 하고, 충격에 반응을 하고, 번식을 하는 등,
생명체를 규정하는 많은 이론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물과, 무생물에 대한 차이점을
규명하는 수준이지, 생명 그 자체는 아닙니다.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의 임무가 있다고 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가 열려야 하고,
돼지는 새끼 돼지를 생산해 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생명체가 본연의 임무를 중단한다면
그 생명체는 죽게 되고,
가령 당장 죽지 않더라도, 후손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전달이 끊어지게 됨으로 결국 죽게 됩니다.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탄소화합물의 물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생명체는 다음 세대를 위해 정확한 설계도면과
임무를 실행할 명령 (생명)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즉 DNA 정보를 RNA를 통해 단백질 합성을 돕고 유전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동차 공장에 철판과 갖가지 부품이 쌓여있고
설계도면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자동차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즉 명령권자가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목적과 필요에 의해 책임을 갖고
파워를 “ on” 한 상태에서
명령을 내려야 생산라인이 움직이면서
자동차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 6:35)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골3:4)
즉 생명은 예수그리스도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생명의 본체는 창조주 “신”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동차 공장의 사장은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생산라인 가동을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주 신은 왜 생명체를 만들고
너희는 번성하고, 이 땅에 충만하라 명령하였을까?
말라기서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말라기 2 : 4~5)
물론, 여기 이야기의 배경은 하나님이 출애굽한 백성과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말한것이지만,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 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체를 만든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글이 다소 비약된 논리요
성경 말씀을 억지로 꿰어 마추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 부활의 아침에 -- 2015. 4. 5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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