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꾸로 보는 세상 ♠

            왜 가난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오늘은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뭔가 시원히 논리가 전개 되어야 하는데

생각한 대로 글이 써 지지 않으니............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고개를 갸웃 거릴 것 같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터무니 없이,  뜬구름 잡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 글을 통하여 진정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 시대가 그렇게 악하여, 마지막이 가까운 때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우리 교회가 부패하고, 목회자가 불법을 행하고

성도가 어리석음 속에 빠져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여러 뉴스를 들을 때 마다

잘못된 문제의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면……

 

정말 교회는 이제 스스로는 자정 능력이 없는 것이냐?

정말 이제는 똑바른 목회자는 따돌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시대냐?

우리 성도들은 겉으로는 거룩하나 들여다 보면

모두 불법을 행하고 속고, 속이며 살고 있는 것이냐?

 

누군가 말할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폄하하지 말아라….

당연하지요

 

정직하고, 성실하고, 충성되고, 신실한 분은 빼고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분들은 빼고 말입니다.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사람은 빼고 말입니다.

그의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사람은 빼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빼고요..

 

그의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없고,

자랑과, 거짓이 없는 그런 사람은 빼고요..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사람이니, 세상과 구별하여 사는, 거룩한 사람은 빼고요..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 그렇게 행하는 사람은 빼고....

또 그가 땅에서 사치하지 아니하고, 방종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날에 그의 마음이 애통하며 초췌한 그분은 빼고요..

그가 고난 속에서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

주의 강림을 사모하여 기다리는 그분은 빼고 말입니다.

 

아직도 빼야 할 훌륭한 분이 많지만 ….

제가 어찌 모든 분이 잘못되었다고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이제 묻겠습니다.

귀하신 당신은 빠져 나오셨습니까?

블벗님 주변에 어떤 분이 빠져 나오셨는지요…..

사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이라는 표어로...

내가 보고 싶은 성경 구절만,

듣고 싶은 설교만 귀에 들어오고,

나머지는 우리안에 들어오지 못한것이 아닐까요?

 

뭐가 그리 잘못되었는지, 무슨 불법을 행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라고 하면 ….

뉴스에 나오는 예만 들어도

얼마든지 우리의 잘못을 예측하고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재수가 없어서 뉴스에 올라온 것은 아닐까요?

 

물론 우리 모두가 그런 불법을 다 행한 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죄의 소원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벨을 돌로 쳐죽인

가인의 마음 속에 죄의 소원이 있었지요.....

아직은 아닐지 모르지만,

아무도 모르는 기회가 온다면,…

당신은 그때, 그 유혹에서 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 유혹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 일 수 있고,

그 유혹은, 평생에 한번 온다고 생각되는 찬스일 수 있습니다.

그 유혹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어떤 욕심일 수 있습니다.

 

혹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49가지를 다 잘했고, 딱 한가지 불법을 행한다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항변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정말 훌륭한 사람인 것 맞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 한가지 때문에 뉴스에 올랐다고 가정해 보면

세상에서 볼 때에, “ 교회 다닌 것들이… “ 라고 욕하겠지요

아니, 내가 49개를 착하게 산 사람이라고….

항변 할 수 있겠어요?

 

곧 질문이 쏟아질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50개 전부를 의롭게 살아야 하느냐?

당연히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지금 시대에 그걸 바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빛과 소금 이라고 하였으니

세상 사람이 30점으로 산다면,

우리는 70점 이상은 되어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겠지요?

그런데 40-50점을 산다면 어찌 빛과 소금이 되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너하고 내가 뭐가 틀리냐?” 라고 묻습니다.

문제는 하향 평준화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왜 이렇게 질이 떨어진 것일까?

이 문제를 간파할 수 있다면

답도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잘나지 못한 내 평생 살아온 경험으로 말한다면

슬프게도.......돈을 사랑함이 그 첫 번째 이유라고 말하겠습니다.

 

모든 사건, 사고를 보십시오

돈과 관련 안된 일이 몇 개나 되는지….

돈의 위력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가히 하나님 수준 아닙니까?

그래서 돈이 필요하겠지요?

돈의 위력을 누려보고 싶은 거지요

하나님의 전능처럼….

우리가 그런 불순한 의도로

돈을 모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돈의 속성이 있고

우리의 이중적인 부패한 마음은

다른 선한 일에 쓸 거라고 핑계를 대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내 자신을 내가 다 알고 통제할 수 있다

설마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이 시대, 우리의 불법과 잘못되고 있는 원인이

우리가 돈을 사랑함 때문이라고 일단 결론을 내려도 되겠습니까?

 

문제의 원인을 안다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나름 해결안을 제시해 보고 싶지만,

 ................. 너무 길어져서 다음으로 미뤄야 겠습니다.

           ------------ 2014. 9. 28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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