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면서 천국가기,

 

 

왜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이, 갈수록 세속화 되어 가고

거룩함에서 멀어지는 것일 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의 욕심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아보기 위한 열심,

사람 앞에서 잘나 보이기 위한 열심,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얻으려는 열심 일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을 때,

속성상, 우리는 스스로 멈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목표했던 것을 이룰 때 쯤이면,

다른 사람은 이미 더 큰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이 열심은 곧 욕심으로 변질되는 것 같습니다.

 

이 욕심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이 떠난, 사람의 허한 마음을 채우려는

본능인지 모르겠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지극히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세상의 어떤 생물에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식물을 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그 기본을 영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잠언 30장에는 겸손한 아굴이 하나님께 말합니다.

나의 죽기전에 거절하지 마옵소서 하면서

인생에서 최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2가지를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의 삶을 살아야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소서 (잠30:8)" 의 수준으로 사느냐? 입니다.

이 문제는, 부자와, 가난의 표준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부자가 무조건 부정적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부자를 만드실수도 있고요....

이런 사람은 얼마든지 부자여도 좋습니다..

 -------------- 예문 ---------------------------------

정직하고, 성실하고, 충성되고, 신실한 분은 부자여도 좋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의에 주리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분들은 부자여도 좋습니다.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사람은 부자여도 좋습니다.

 

그의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는 사람은,

그의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없고, 자랑과,

거짓이 없는 그런 사람은 부자여도 좋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는 사람이니, 세상과 구별하여 사는, 거룩한 사람,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 그렇게 행하는 사람,

또 그가 땅에서 사치하지 아니하고, 방종하지 아니하고

살육의 날에 그의 마음이 애통하며 초췌한 그분,

그가 고난 속에서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여

주의 강림을 사모하여 기다리는 그분은 부자여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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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열심이 온통 부자 되는데 노력을 하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온통

주님께로 향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재물을 추구하는 맘몬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불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여서 필연적으로

하나님 아니면, 누군가 능력자에게 속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이희돈 장로님의 간증이 멋지고 훌륭하고

김용의 선교사님의 설교가 폐부를 찌르고

박보영 목사님의 설교가 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되지만

왜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나?

이제부터는 그리 살겠습니다.” 결심을 하였어도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애써 진실되이 살고 싶어 하지만

집에만 가면, 설교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달려가는 기차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내가, 달려가는 기차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기차는 버려두고, 그 기차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함은, 백 번 인정하지만

생각해 보셨나요?

위에서 말한 ---- 예 문 ----처럼

실제로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온통 나의 삶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

뭔가 송두리째 바꿔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바뀌고도, 현재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니 엄두가 나질 않는 것입니다.

내가 날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주님께 칭찬 받을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뜻일 겁니다.

그러니 부자가 되기 어렵겠지요

 

남들처럼 잘살기를 포기하지 않고서야

이 말씀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가난을 각오하지 않고

이 말씀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잘살기 위해 온 정신을 쏟으면서

진정, 이 말씀을 따를 수 있을까요?

 그렇군요, 여기서도

나의 믿음 없음이

나의 발목을 잡고있습니다.

               ..............  2014. 10. 4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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