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보다 국을 더 사랑하여

자신의 조국보다 더 한국을 위해 헌신한.....

 

우리가 조국이라고 부르는 이 한국을 위해서....

이역만리 먼 자신의 고국, 일가,친척을  버리고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

자신의 전 일생을 바쳤습니다.

 

어떤 분은 처형되기도 하였으며,

어떤 분은 천연두에 걸려서 젊은 날에 이국 먼 나라에서,

꽃같은 생을 마감해야 했으며

어떤 분은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홀로 조선의 방방곡곡을 누비며

어떤 분은 33세에 조선에 들어와 42년을 선교사업을 이루고 대학을 설립하여

조선 백성을 깨우치겠다고 자신의 모든 생을 바쳤으며,

 

자신 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녀가 함께 이나라의 민족의 영혼을 위하

죽기도 하고, 처형당하기도 하고, 테러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그럼에도, 그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처형한 나라에 다시 들어와

의료선교를 펼치고,

그의 아들이 또 들어와 대대로 이 조선의 나라에 헌신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1884년 경 바로,  조선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누가 그들을 이곳에 보내었을까요

왜 그들은

길거리에서 옷을 벗어 이를 잡고 ,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 이 조선을 사랑하게 된 것일 까요?

 

 

 

어떤이는 고종황제를 도와 일본의 침탈에 대항하며 가장 어려울 때 한국의 진정한 친구였으며

6.25 전쟁 때 스스로 조선을 위해 다시 달려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분이 있었으며,

일제의 침탈에 무능한 우리의 대신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분연히 일어서 일본에 대항한 두분의 특별한 선교사는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상해로,헤이그로 달려가기도 하였습니다.

 

잠깐동안의 묘비에 적힌 내용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뜨거워지며 그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은 무엇이 아쉬워서 이곳에 오셨습니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죽기까지 우리 조선을 사랑하셨습니까?

 

이날은 추석연휴기도 하였으나 아들이 중국파견을 나가게 되어 인천에 가는 길에

양화진에 들렀습니다.

이번에는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5년 만에 양회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다시 찾앗습니다.

양화진 홀은 내부 수리중이어서 입장할 수 없었습니다.

이 홀에서는 영상으로 된 선교사님들의 이야기와 유품들이 전시되었는데

볼 수 없어서 아쉬었습니다.

......................... 2014. 9. 15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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