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인생 성공했네-

 

벼 이삭이 고개 숙인 황금 들판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가슴 뭉클한 쎈티한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 아침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 때문인가?

어제 밤 바람이 많이 불더니 서늘해진 날씨 때문인가?

 결실의 계절을 바라보면서

나도 인생의 결실을 바라 보는 때라고 느껴서일까?

굳이 오늘 아침은 철학자가 아니어도

인생을 논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입니다.

 

창밖 들판에 오곡이 익어 가고, 또 거두어 들이는 것처럼....

누가, 어떤 사람을 보고 그 인생 성공했네..” 라고

말 한다면, 그 성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보는 관점이나 가치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저 평범한 범인의 조건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부가 큰 질병이 없이 함께 노년을 맞이하였다

@자녀가 잘 자라서 결혼하고 손주까지 보게 되었다

@준비한 자금으로 자녀에게 부담 지우지 않고 노년을 살고 있다

 이 정도면 되었지, 무슨 재벌이 되어 유산을 남기겠다는 등의

생각은 평범한 범인은 할 필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아직 두 아들, 결혼을 시키지 못하였네요

퇴직 전에 이룰 수 없는 꿈인가 합니다.

그래서 --- 걱정도 됩니다.

그 인생 성공했네….” 이런 평을 들어야 할 텐데요

 

그런데 사실은 더 중요한 것을 빠뜨렸군요……

우리 두 부부 하나님의 자녀로 애써 살았으며

우리 두 아들, 주님의 종으로 살도록 가르치고

그들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면

다른 것 좀 부족하다고 해도,

그 인생 성공했네…”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5-10-02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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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해 봅니다. / 주여 뉘시니이까?

  

                                                                                                    http://www.ozi.co.kr/ => 이정식님의 작품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설교를 시청하였는데

나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뭐 사람마다 감동과, 느낌이 다르겠지만

주님(예수님)에 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좀더 멀리,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는 이야기 들이지만

감동이 가시기 전에,

내가 아는 범위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 에 대해서 재구성 해 보겠습니다.

--- 이 이야기는  나의 개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쓴 것임으로

신학적인 오류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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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주님(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자기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함께 행복한 날을 지내시던 주님은

선악과 때문에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범죄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많은 고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자기 분신처럼 사랑스럽게 여겼던 사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처럼 사람을 사랑하셨으나

사람은 거룩하신 주님이  높은 곳에 계신 주인일 뿐,  

그분의 사랑을 몰랐습니다.

 

아니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는 그분의 진심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냥 살다가 늙어 죽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주가 우리를 위해, 하늘의 새와,

꽃을 만들고물고기를 만들고, 과일을 만들었다고?

세상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설마, 그럴리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사람을 다시 살려서,

나는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동산에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히시던 그날

인류 구원의 계획을 이미 시작하셨습니다.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주님과 소통할 수 없게 됨으로

그 후손들은 점점 주님이 누구인지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인 죽음과, 죄의 속성인 악이,

세상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시기도 하셨으나

노아 홍수 이후에 무지개로 언약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주인되는 자기를 알리기 위해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분은 또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을 펼치며 이스라엘 자기백성을

이집트 파라오의 노예같은 통치에서 이끌어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레위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분은 약속을 통하여

사람이 죄 사함 받는 방법과,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 가르쳤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 하였으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기원전 1,500~500년 경에 주님은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이 구원의 메시야로 이 땅에 올 때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왜 자신이 세상에 와야 되는지

사람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진정 그들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약 4,000년이 되는 긴 시간을 주님은 준비하시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의 자손과 함께하며

주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미워하시는지

자신을 알리기 위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인간이 고난 받는 이유를 가르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찾고, 주님 갈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할지라도 그들 속에 있는 죄악 때문에

결국 하나님을 떠날 수 밖에 없음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만유의 주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

즉 사람이 사는, 다른 차원의 아주 작은 카데고리 안으로

들어갈 것을 결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한번 사람이 된 이상은,

전능자의 권한을 행사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되는

어떤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약속한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인간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얼마나 자랑스럽고 귀하게 여기셨으면

짝사랑처럼 그렇게 사랑하신 걸까요?

그 백성은 하나님을 두려워 할 뿐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긴, 철없는 자녀가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베들레헴에 나신 주님께서는 사람과 똑 같은

희로애락을 가지고 성장하셨습니다.

때문에 미쳐 알지 못했던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여러 가지

질병과, 슬픔과, 멸시당함과, 위협과, 죽음을 보셨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그리워하고 사랑스러웠던

그리고 온 정성을 쏟아 조성하여 지은 사람들...

그들이 사는 유대나라  나사렛에서

사랑과 가슴 벅찬 기대로 사람들의 눈빛을 바라보았습니다.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  스바냐 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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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인간과 함께 있었지만

무지한 백성이 그들의 주인되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에

얼마나 마음 아프셨을까요? 그리고 답답하셨을 까요?

하지만 그들이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들이 말한 주님의 진정한 뜻도 모른다는 것을

뻔히 아셨겠지만 그것만으로도 기뻐하시고 치료해 주었습니다.

아니 죄까지 사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지한 그들의 슬픔을 연민으로 바라보시며

울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그들,

1,000년 전부터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알려주었고

레위와 언약했던 바로 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을 영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주님을 배척하고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멋진 기도를 드리고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은 주님이 아니고, 사람들에게서 칭찬받는 것에

목말라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었으나

사람들이 칭찬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분은 진정 화가 났습니다.

무지렁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고

주님을 잘 섬긴다는 그들의 행태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잊을 뻔 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라새인 들이여,

너희는 회칠한 무덤과 같이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 분노를 사람에게 쏟을 수는 없어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심판의 주로 오신 것이 아니니까요

 

사람들의 죄를 씻기 위해서

암소와 어린양이 제물로 죽어야 했지만

사람들은 그 제물을 위해 슬프게 생각기는 커녕

자신의 죄를 속죄해야 하는 제사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의 욕심 채우는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을 뜨고 있으나 주님을 볼 수 없었던 것은

그들 스스로, 소경이 아닌 온전한 자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리라~! "

그래도 그들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털 깍는자 앞에 잠잠한 양처럼 입을 열지 않아도

그들은 이사야 53장의 예언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자신이 받은 은화30개를 성전에 던져 버렸지만

그는 물론이고 성전에 있던 이들도 스가랴 11장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은 전능자의 능력이 아니고,

자신의 사랑으로 진정 그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그분이 미워하는 것을 오히려 즐겨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들 속에 유전되고 있는 죄 때문인 것을---

주님은 자신의 피로 그 죄값을 치르고

자기가 조성하고 지은 그들을

다시 아들로 삼고 싶어하셨습니다.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탕자의 아버지가 되기를 결심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쓰러지고 넘어져도

군병들의 매서운 손에 빰을 맞고

눈을 훌기며 비웃고 얼굴에 침을 탁 밷었지만

주님은 참아야 했습니다.

인간이셨기에 그 아픔과, 터질 것 같은 슬픔을

참아 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의 죽음

두렵고 떨림으로 골고다까지 가야 할 힘도 없었습니다.

예전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지정한 그 산을

주님은 자기가 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미리 아셨지만

인간이셨기에 두려움과 슬픔 또한 벗을 수 없었겠지요

육체의 고통은, --- 알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십자가에서 창에 찔려 피와 물을 다 쏟으시고

다 이루었다를 외치시고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

4,000년의 역사를 이제 손수 마무리 하셨습니다.

그 길었던 수많은 여정,

이제다 이루었다!!

주님은 자신이 할 수 밖에 없는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     

          ................... 2015 / 6 / 19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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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용현목사님 / 기독론 / 초림주 예수님

     ====> https://www.youtube.com/watch?v=e-ogsVyDZ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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