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생활"" 모든 기독인의 소망이고 목표이지만 ..쉽사리 설명이 어렵고, 설령 설명한다고 해도 ...

우리가 쉽게 수긍하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그런 이야기 제목은 아닌것 같습니다.

때문에 아무 자리에서나 선뜻 대화에 올리기 어려운 화두인 게지요.

 

어렵고 어렵기만 한 이 거룩함의 화두는 내게 있어서는 떨쳐버릴 수 없는 어려운 방정식으로......

생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거룩 .... 우리가  대충 이해하는 수준은 있지만 ... 주님께서 바라시는 거룩함 이란 무엇이 일까?

내가 오늘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거룩함 일까?

.....................

 

몇해 전에 우리교회를 떠나  고흥의 어느 초라한 어촌마을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시던 목사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좀 많았을  조목사님.....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부인과 자녀가 모인 자리에서 임종하기 하루전인가 ..유언을 하셨단다..

너희는 행복하게 살려하지 말고, 거룩하게 살아라.....

인생을 마치면서 너무나도 할말이 많았을 텐데 ....

그렇습니다.

성경에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레 11:44; 19:2; 20:7)
주를 보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멀다는 뜻이겠지요? ... 거룩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한마디 입니다.

그럼 여기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함이냐?

비슷한 설명은 많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설명은 무엇일까요?

물론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속에서 피부에 와 닫는 설명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말하고 삶에 적용하겠습니까?

 ........

마음에 와 닫는 글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고 관계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간 선지자들은 광야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하나님과 거룩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거룩은 장소에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칼타코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가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앉아서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삼류기차입니다.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사람들은 바글바글 댔습니다.
술 마시고 취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온통 시장바닥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테레사는 조용히 묵상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하게 들려 왔습니다.
<테레사야! 여기에서 5마일만 가면 50만명의 거지들이 길거리에서 나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고 있다.
너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살아 있을 때에는 잠자리를 주고, 죽으면 무덤을 주거라.>


테레사는 조용히 수도원을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1948년 8월 8일 그는 로레토 수녀 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등에 나무로 조그만 십자가를 달아 놓은 수녀복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수도원을 떠나면서 일기를 남겼습니다.
<주님! 나는 오늘 밤 어디에서 잘 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 나는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이 떠나라고 하셔서 떠나니 지금부터 내 일생 주님이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리고 칼타코로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기차안도 됩니다.
광야도 괜찮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곳이 거룩입니다.

 

고급 부폐 음식점이 있습니다.
아주 비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놓고 아주 비싸게 받는 고급 음식점입니다.
싱싱한 연어 회를 놓고 그 앞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먹을 만큼만 가지고 가십시오.>
조금 떨어진 곳에 더 비싼 요리 로브스터 요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장난으로 그 옆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마음껏 가지고 가십시오. 하나님은 연어를 지키시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연어 앞에도 계시고 로브스터 앞에도 계십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거룩하여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구약성경 시대에 하나님은 지성소에만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며 휘장이 찢어져 지성소가 들어난 후에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거룩의 관계를 맺은 곳은 어느 곳이든지 지성소가 되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만났습니다.
후에 천국에서 세분이 다시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야! 홍해를 지금도 가를 수 있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모세가 기도하고 지팡이를 홍해에 내밀었습니다. 역시 갈라졌습니다.
<지금도 그 때 영력이 그대로 있구나! 놀랍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아! 지금도 갈멜산 기적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할 수 있니?>
<해보겠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고 손을 하늘을 향하여 쳐들었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놀랍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지금도 물위로 걸으실 수 있으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해보겠다.> 그리고 물위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속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두 명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왜 그러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못자국으로 구멍이 나서 물이 샜다. 너희를 향하여 헌신한 증거다.>
예수님의 손발 그리고 옆구리에 박혔던 못 자국으로 물이 샜기 때문입니다.
사랑에의 집착

십자가는 거룩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거룩한 관계를 하고 계십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이 글은 인터넷 <경북공고 재경동문회>블로그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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