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6:9) "

 

리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내 능력 만으로는

안되는 일이 넘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밀려 오는 두려움일 수 있고,

그것은 풀 수 없는, 갈등관계의 일들 일 수 있고,

일용할 양식을 위한 일 이거나,

나의 건강에 대한 두려움 일 수 있습니다.

 

런데 왜 기도하라는 것일까요?

그 분은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진정으로..) 우리의 친 아버지 되심을

비유를 통하여 에둘러 표현하십니다.

탕자의 비유가 그렇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의 끝 부분인 “(5: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이가 살아있다

말씀하신 그 때 인줄 알고… “

이 대목이 오면 나는 읽을 때 마다 눈물이 납니다.

그 아버지의 애절함이 백번 공감 되기 때문입니다.

 

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모르지만 왕의 신하는

자기 힘으로  아들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의 죽게 된 아들을 가버나움에 떼어 놓고

갈릴리 가나에서 눈빠지게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유하시고, 늦게 도착하신 주님, 

그 왕의 신하의 심정을 상상해 보세요

숨만 몰아 쉬고 있는 아들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자식이 이처럼 위태로운 적이 있었나요?

그것은 자녀의 질병일 수도 있고,

그의 좌절일 수도 있습니다.

네가 어찌 그리 하였느냐….” 탄식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런 상황을 겪었다면 …“아들아,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다, 내 탓이다..” 이런 생각이

당신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아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지만

다시 예수를 모시고 약 25 km 거리를 가야 했습니다.

 

수께서 그 왕의 신하 마음을 몰랐을 까요?

오히려 왕의 신하의 마음을 떨리는 감동으로

보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스스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그 아버지의 마음을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에요....ㅠㅠ

 

제껏 왕의 신하혹은, “그 사람이라고 하더니

예수를 설득하여 아들이 낫게 된 후에 (설득도 아니지만)

그 아버지가, ----(4:53)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제 그가, 아버지의 역할을 성공했다는 뜻일까요?

 

여기서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요?

아들을 향한 그의 애절한 사랑을 보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었으니까요

 

기서 (요4:53)  당신의 눈시울이 뜨겁지 않다면

당신은 아직 신하의 비통함을 공감하는 험악한 세월이

없었거나자녀 위해 눈물로 기도할 일이 별로 없는,

평안한 삶이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도의 필요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뭔가 많이 알고 있지만

 

응답이 언제될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만 생각하면 될 듯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 기도하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아들로 인정하는지

 

 

 

것이 문제의 열쇠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명령이 어렵다고 합니다.

 

쉽다면 그것이 신의 아들이겠습니까?

 

쉽다면 영생이 천하보다 귀한 것일까요?

 

한 사람의 생명이 살아 난다는 것이

 

쉬운 일일 까요? (5:25)

 

우리의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다 합니다.

 

시궁창에 젖은 옷으로 왕의 앞에 갈 수 없겠지요

 

우리의 기도가 아버지 앞에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기도가 전달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해결책이 없겠어요

 

다만 우리의 결심이 없기 때문이지요

 

에스더의 고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주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결국 우리는

 

이 문제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결심한다고 이루어 질까요?

왜냐하면 내가 육신의 소욕을 가득담고 있거든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될테니까요

 

결국 내안에 있는 어떤 것도 의롭고 선할 수 없다는...

버리고, 버리고......

 

그리고 나서야, 성령님의 임재할 수 있는 자리가

조금씩 점점 크게 비워지지 않을까요?

그 때에야  거룩한 공간이 준비될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 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6:44)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 든지 구하라 (요15:7)

 

            ………………

 

          2020. 05. 17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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