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던, 단 한가지 이유

 

우리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많지만,

사람은, 독특하게도 근심과 걱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돼지가 근심하고,

강아지가 걱정하는 것 보셨나요?

사자를 발견한 멧돼지가 두려워 할지는 모르지만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미리 근심하고, 걱정 하지는 않을 겁니다.

 

왜 사람은 근심이나 걱정을 하게 될까요?

여러 가지 주장이 있겠지만,

사람은 스스로 뭔가 결정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기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자기 의지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근심도, 걱정도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가는 길이 누구나 똑 같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프로그래밍 된 대로 일하고 나서 스스로

걱정한다면 이미 로봇이 아니겠지요

강아지가 태어나서 주어진 환경과 생리에 순응할 뿐이지

옳고 그릇됨을 공부하여 삶을 바꾸는 강아지는 없습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인격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악을 구별하고,

자기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 등을 하는데

그 결과가 어찌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사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선택하지 않고

아무 책임이 없는 사람,

아무것도 필요가 없는 사람 일 것입니다.

결국 갓난 아이일 수 밖에 없겠네요….^

 

결국 정상적인 사람은

근심하고, 걱정한다가 정답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근심 걱정이 없기를 바라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없고,

일의 결국을 미리 알 수 없으니 근심과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근심과 걱정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죽음을 제외하고,

근심과 걱정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문제는, 근심과 걱정으로 표현되고 시작됩니다.

모든 범죄와 해악이 근심과 걱정 때문에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이 내일 죽는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면 ….

그가 지금까지 고심한 근심과 걱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자녀의 결혼문제?

아내의 건강문제?

자신의 재산문제?

내일 내가 죽는다는데, 그것들이 나의 관심사가 될까요?

 

만약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모든 것 다 버리고

이제는 신의 뜻대로 살겠어요….

그런 기도,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근심과 걱정의 사연들….

알고 보면 그것은 다 허상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잊고 있을 때는

근심과 걱정의 문제가 너무 커 보이지만….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4:1)

이러 저러한 방법으로 근심을 해결 해 준다는 것이 아니고,

쌩뚱 맞게도 주님은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버지의 집, 천국에 집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비약해서 말하는 것일 까요?

이 세상의 수많은 고통과 사연들이 있는데근심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삶이 사실은 허상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별 의미 없는 허상이라면 왜 우리에게 그 허상의 삶을 주셨을까요?

허상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단 한가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기 위함입니다.(1:12)

 

세상에는 금수저도 있고, 흙수저도 있고 ...

세상에는 올림픽 선수도 있고,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병자도 있지만 ...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있으니....

그 기회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허상같고, 불공평해 보여도 이 세상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2017.10.18 / 늘감사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쭉정이 는 왜 날아 가는가?  (0) 2018.10.28
청년에서, 어느덧 노인으로 !  (0) 2018.07.24
기도 응답 (應答)  (0) 2017.07.27
무궁화를 아십니까?  (0) 2017.07.10
마르다는 억울하다?  (0) 2017.03.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