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온 사진입니다...

나는 오늘 절망의 벽을 보았습니다.

나는 오늘 탄식하며 혼돈 속에 빠졌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교회의 출석률이 떨어지고 급기야
교우들의 교제도 뜸해지면서, 알게 모르게 
그대들과 나의 관심이 점점 멀어 짐을 느낍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우리 한국교회가 침체의 늪으로 깊이 빠지기 전에 
절박한 이 시점에, 그 문제의 책임을 논하기 전에
나는 제안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소그룹 성경공부를 시작해 봅시다.
장로도 몇사람 성경공부 소그룹 리더로 세워 봅시다.
물론 모든 장로가 그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마다 다르겠지만,
성령으로 뜨거워진 교회가 아니라면 
포스트코로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밑바닥에서 다시 불을 지펴야 합니다. 
교회 안에 너무 많은 비율의 육의 사람이 진치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는데 할 말이 없다면서도 
왜 교회는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왜 남의 탓만 할까요?
잘 가르쳤는데 그들이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고?
그러면 함께 가르쳐서 모닥불을 피워 봅시다.
한개의 모닥불이 10개, 100개로 늘어날 때 까지…

"장로는 안됩니다 "
신학을 하지 않은 사람은 위험합니다!
신학이 뭘까?
신학을 안 배워서 그리스도를 가르칠 수 없다?
성서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여성신학, 해방신학
신학은 수 없이 많은데 … 몇가지 신학을 배워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기가 팍 죽었습니다.
감히, 누가 그리스도를 알아서 그를 가르칠 것인가?
이 코로나 시대에 목회자를 돕는 것이 옳겠지요.
소그룹 운영은 많은 수의 리더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로도 소그룹 공부 리더로 세우자는 이유입니다.
설교나, 세미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의 처방은, “가르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성경공부처럼, (행10)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을 충성된
(신실한)사람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2:2)
살리기 위해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가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생수의 강이 넘치는데도 이런 상태일까요?
한국교회는 설교가 만능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설교만 하면 2천명, 3천명이 회개하고 중생 합니까?
지금 그런 때입니까?
“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2)
장로가 무엇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뜻일까?

오늘 나는 당회서기의 직무가 아직 있을 때, 이 말을 
쉽지 않게, 깃발을 들어 올렸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어요
잠못 이루는 이 새벽에 ............
“ 나는 넘기 어려운 절망의 벽을 보았습니다.”
        …………………………
         2020. 11. 1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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