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無窮花)꽃을 아십니까?

무궁화는 첨부 글에서 설명하듯이

우리 민족과 함께한 아름다운 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영문으로 된 이름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 Rose of Sharon “

샤론의장미라는 뜻이지요?

I {am} the rose of Sharon, {and} the lily of the valleys.

    (아가서 2:1) / KJV

" 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

 

우리민족이 특별한 점은 여러 곳에서 감출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의, 한 왕조가 500, 1,000년을 내려온 것이라든가,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기독교를 누가 전해 주기도 전에,

중국에서 스스로 성경을 번역하고 수입해 들어온 나라...

물론 나중에 선교사가 들어 왔지만.....

우리나라 애국가에 하느님을 넣을 정도로 하늘에 대한 경외심이 강한 나라

우리나라의 경제가 100년도 안되어 최빈국에서 세계 12권의 국가가 되고

촛불로 대통령을 바꾼 나라

수없이 많은 특별함이 있지만 ….

무궁화 꽃만 해도 그렇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우리민족의 애환과 함께 했던 이 무궁화가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라니 너무 놀랍지 않나요?

기독인이라면 왜 특별하다는 것인지 이해 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나라가 사방이 막혀있는 어려움 속에 있지만

특별한, 지금까지 함께 했던 그 특별한 경로로

놓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2017.7.10   / 늘감사

 

참고로, 퍼온글 입니다..

소규모 무역상들인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그리고 서상륜 등을 만났다.
이들은 홍삼을 중국에 내다 팔고, 약재나 비단 등을 조국에 들여와 파는 상인들이었는데, 처음에는 경제적 이득, 혹은 외래 문물에 대한 강력한 호기심 등으로 로스팀의 어학선생이 되었고, 마침내 한글성서 번역에 참여하게 되었다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성서를 번역하던 한국인 참가자들이 강요와 권면 없이도 성서 자체에 의해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자청하는 사건이 발생한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자신들이 번역한 성서를 지니고 조국 전도 길에 나선다. 이들은 고향인 의주, 그리고 평안도 일대에서 권서(
勸書)전도자로 활동했으며, 특히 서상륜은 한국 최초의 자생적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설립된 황해도 장연의 솔내(松川)를 거쳐 서울 남대문 밖에 정착하여 전도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선교행로를 '북방선교루트'라고 이름할 수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의 정착 과정 (한국교회의 역사, 2003. 10. 30., ㈜살림출판사)

 

한국에 일찍부터 무궁화가 있었다는 것을 전해주는 가장 오래 된 기록은 동양 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군자국에는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國 有薰花草 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는데, 훈화초는 무궁화를 가리킨다. 《원중기(元中記)》에서도 <군자의 나라는 지역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다(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고 하고 있으며, 《고금주(古今註)》에도 비슷한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또한 신라에서도 최치원(崔致遠)이 지어, 효공왕(孝恭王)이 당나라 소종(昭宗)에게 보냈다는 국서(國書) 가운데 한국을 <근화지향(槿花之鄕;무궁화의 나라)>이라 하였는가 하면, 고려 예종 때에는 고려를 스스로 <근화향>이라 자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여 보면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군자의 나라 동이(東夷)는 사람들의 민족성이 군자답고,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는 나라>라고 예찬함으로써 한국을 <무궁화 피는 화려강산>으로 인식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 광해군 때의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있어 꽃을 피운다>라고 적고 있으며, 숙종 때의 대학자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도 무궁화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어사화(御賜花)를 내렸는데, 어사화의 장식이 무궁화꽃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해 무궁화에 대한 날조된 비난과 왜곡이 있었다. 그러나 우호익(禹浩翊)은 <무궁화예찬>이란 글을 통하여 일제의 만행과 왜곡된 허상을 반박하고, 독립의 의지와 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하였다. 또한 안창호(安昌浩윤치호(尹致昊남궁억(南宮檍) 등도 무궁화에 대한 사랑으로 민족정기를 일깨우려 하였다. 국화(國花)로서의 무궁화는, 국기(國旗)나 국가(國歌) 같이 확실한 법규정이나 역사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무궁화는 3000여 년 전부터 민족정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용되었고, 더욱이 1948년 정식 채택된 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후렴구를 사용함으로써 국화로서의 의미를 인정 받았다. 또한 입법·사법·행정 삼부(三府)의 표상으로 무궁화가 사용되고, 국기의 봉도 무궁화 봉오리로 제정되어 무궁화는 명실상부한 나라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http://lsk1122.tistory.com/896 [Akra 렌드로e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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