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거룩한 교회로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통합측 표어에 -- 그림을 넣었습니다.

 

 "  다시 거룩한 교회로 - 2 "

전편에서 거룩함이란?

세상과 구별되고 분리된 것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느냐?

성경은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 때문에 아들 예수를 보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보고. 듣고. 이해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사랑과 은혜에 풍성하신 주님이시니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얻겠지요….” 대부분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신앙생활의 의미는, 각종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생활 하고,

기도와 봉사 하는 것 등 입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적당히 세상에서도 누리고, 장차 천국에서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약 600년 전에 하박국 선지자는 노래했습니다.

 

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3:17-)

 

사람이 어찌 이런 궁핍함 속에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하박국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렇게 노래했다는 거겠지요?

 

내가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지 와

될 수 없는지는, 가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즉 내가 이 세상에서 누려야 할, 최고의 가치가 어떤 것인가 입니다.

포도원의 소출, 외양간 소처럼 우리 삶을 만족시키는 물질인지,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이신지 선택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배우고

그 속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혼란을 겪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이미 세상적인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가치를 알기는 했지만 노력해도 어렵습니다.

결국 판정패 당할 일이지만 사람의 연약함을 하나님이 모르실까요?

 

해법이 왜 없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오셨고,

그것도 부족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리의 성령을 보낼 것인데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7: 13)

결국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진리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 가치관을 바꾸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그 성령님과 나와의 관계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 나는 목회자가 아닙니다.

나의 글이 신학적으로 맞는지 검증 받지는 않았지만

너무 답답하여 이 글을 씁니다.

나와 같이 답답한 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7.1.14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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