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축복의 삶으로

 

시한부가 축복이라면

그냥 오늘을 사는 나는 축복이 아닌가?

시한부도 축복일 진대

건강함으로 오늘의 삶을 누리는 당신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임에 틀림없지만.....

오히려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시한부가 축복인 이유는

그 시점에 세상 모든 것을 접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달고 쓴맛을

세월을 통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터득한 지금,

정말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깨닫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시한부는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 하루 휴가 내서 생각하면 되지~

까짓 것 도서관 가서 1시간 생각해 보면 되지 ~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정말 그럴까요?

 

단언하지만 1년의 시한부를 선고 받은 사람의 생각과

하루 휴가 내어 생각하는 사람의 사고(思考)는 같을 수 없겠지요

왜냐하면,

직장이 있고, 자녀가 있고, 가족이 있는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의 생각도 우선 순위에서 뒤처지게 됩니다.

 

그래요

남 말할 것이 아니고

내가 시한부는 아니지만 똑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다급한 심정이 아니니까….

나의 마음과, 생각도 느긋해지고

급할 것이 없다 여기게 됩니다.

그니까,

심각한 일들은 뒤로 미뤄지게 되는 거겠지요..

그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내 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을까?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큰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부패되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새로워 져야 한다고 하는데

뭘 어떻게 새로워 져야 하는가?

그런 삶을 사는 롤 모델이 (Role model)누구인가?

실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해답이 있는 것인가?

우리의 영원한 그분은 예수님 이시지만

성경이 우리의 나침반이고 길이지만

 

우리가 하나님 믿기가 이렇게 어렵다면

예수님 믿고 따르기가 이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면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닐 겁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라” - 11:29 -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그럴 겁니다.

우리가 수없이 설교를 듣지만

뭔가 처음부터 잘못된 상태에서 듣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되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뭔가

 

처음부터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아무튼

시한부의 기회처럼

나도 그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그런 자세로 살아 볼려고 합니다.

그것이 축복이니까요

뭔가 시도해보는 것 중에서  성경암송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외우기로 작정했습니다.

젊은이는 며칠이면 외울 것을

 1달이 넘도록 쉽지 않았습니다.

한달 동안에 1장씩 외워보겠다고

목표를 느긋하게 잡아서 오히려 쉽지 않았을까?

오늘이 10 1일인데 14장은 외웠는데 15장을 조금 덜 외웠습니다.

목표는 매달 한 장씩

14.15.16.17장 까지 외워 볼 생각입니다.

 

뭣 하려고 외우느냐?

물으신다면 딱히 주장할 말은 없지만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으로 만물이 지음을 받았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셨으니 ----

그 말씀을 외운다는 것은

그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각인시킨다는 것은

충분히 수고할 가치가 있는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2016.10.1 / 늘감사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거룩한 교회로   (0) 2017.01.12
함께 살고 싶은 사람  (0) 2016.12.18
시한부는 축복이다.  (0) 2016.09.27
시한부 인생의 축복  (0) 2016.09.24
집짓는 거미 /동영상  (0) 2016.09.07

 

 .. 시한부 인생이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인가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마지막 삶을 준비해야 하는 그런 안타까움을 연상하게 됩니다.

 

맞는 말이지만

어느 누구도 시한부 인생이 아닌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그 시한부가 얼마나 짧은 것인지 차이는 있겠지만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건강한 당신이라고 100세 까지 산다는 보장이 있나요?

물론 120세 까지도 가능이야 하겠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이 험한 세상에서 알 수 없습니다.

어제는 멀쩡했던 처 오빠께서 고혈압으로 하직하셨습니다.

뉴스에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교통 사고로 도로에서 생을 하직하고

누구는 돈 때문에 칼에 찔려 하직하고

누구는 스스로 한강다리에 올라가서 하직하기도 합니다.

나는 오늘 괜찮다 할지 모르지만,

내일 어떤 일을 당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시한부가 꼭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 누워있는 시한부는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한부 인지도 모르고 출근했다가

오후에 가족도 모르게 하직하는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단 사흘 이라도 시한부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이라도 했겠지요….

 

시한부를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자유로워 집니다.

누가 그분께

이 일을 해라, 저 일을 해라 간섭하겠어요?

다만, 남아있는 날들을 어떻게 쓸지가 문제일겁니다.

세상의 시계로는 길고 짧음이 있겠지만….

3년도 짧을 수 있고

3일도 충분히 길 수 있습니다…..

고민해야 할 첫째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닙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얼른 생각해 보면

왜 하필 내가 시한부냐고 항의 하겠지요?

초등 생 같은 질문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다.?

3일의 시한부도 받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3시간 뒤에 생을 하직하는 사람도 있다니까요

저의 처 오빠 고인께서는 저녁을 잘 드시고 주무셨는데

아침에 식사하라고 문을 열고서야 아셨다니까요

바로 어제 아침의 이야기 입니다.

삼가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지만

오히려 따끈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지만 사연을 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한부를 갖고 있는 당신은

사실은 대박의 축복입니다.

이 놀라운 기회를 당신은 얻으셨습니다.

세상 사람의 대부분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80평생을 살아도,

바쁜 인생의 삶을 위하여 달려가다 보면

멈출 수 없습니다.

관성의 법칙 있잖아요

우리가 철 들면서 시작한 삶의 법칙과

내가 소중히 여겼던 삶의 방법을 잠시 중단하고

맞게 살아 왔는지, 확인 할 수 있는 타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50대의 삶을 살았다면,

60대에도 그는 비슷한 삶을 살 거고

70대에도 비슷할 거란 말입니다..

그러다 시한부의 기회도 없이….

어느 날, 그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니까

시한부를 얻었다면 슬퍼할 것이 아니고

그 기회를 대박의 찬스로 만드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다음 편에는

어떻게 대박의 기회로 만들 것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 2016. 9.24 / 늘감사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부터 다시   (0) 2016.10.01
시한부는 축복이다.  (0) 2016.09.27
집짓는 거미 /동영상  (0) 2016.09.07
밤이 새도록 환호한 그들 !  (0) 2016.08.28
나는 배우다.  (0) 2016.08.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