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아 달리다굼 !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 달리다굼 ”
하시니..... (마가복음 5:41 )
“
예수께서 말씀하신 "달리다굼" 은 아람어로
" 소녀야 일어나라" 의 뜻이라고 합니다.
왜 예수께서 평상적인 헬라어로 말하지 않고
"달리다굼(탈리다 쿰)"하셨을까?
여기서도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권위/권세에
대해서 더 묵상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 중에 즉시 실행되어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경우는, 그 명령[Order]이 명확하여야 했기 때문에
아람어를 쓰지 않았을까?
나사로가 무덤에 있을 때 "나사로야...하지 않고...
"친구여 나오너라!" 하였다면 수많은 시체가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창조하신 그 분이
자연법칙 중에, 한정하여 어떤 부분을 정지시키고
바꾸어야 한다면, 전체 프로그램에 혼선을 주지
않고 이루어져야 함으로 아주 정확하고, 명확한
명령(Order)이 필요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
아람어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소녀야 일어나라’ 하면 …그곳에 또 다른 소녀도
있을 수 있음으로, 정확한 대상을, 한정하기 위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할 때는 대상이 명시
되었음으로 그를 만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처럼 권세있는 말씀 이라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런 말씀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 이후로는
룰과 법칙이 만들어 져서 반드시 실행될
것임으로 이 말씀을 내 삶에 적용시켜 낸다면
틀림없이 확실하고 변할 수 없는
법칙의 성공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함이 나의 무지입니다.
………………….
24. 2. 22. 목 / 늘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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